공부가 잘되는 날이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날의 컨디션, 먹은 음식, 주변 소음… 하지만 정작 무의식적으로 놓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색’이다. 나는 최근 일주일간 책상 배경색과 조명을 바꿔보면서 집중력의 변화를 기록해보았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뚜렷했으며, 내가 느낀 점을 자세히 기록해보려한다.
월요일 – 아무것도 하기 싫던 날, 의외로 손이 잘 움직였던 이유
월요일은 늘 그렇듯 무기력하게 시작됐다. 딱히 공부하고 싶은 의욕도 없었고, 머리는 여전히 주말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책상 앞에 앉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겠지만, 이날은 아침에 책상 조명을 ‘따뜻한 연노랑’으로 바꿔봤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실험이었고, 노란색이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반신반의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중이 아주 ‘잘 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해야 할 목록을 작성하고, 메일을 정리하고, 독서 과제를 조금씩 시작하는 데 큰 저항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미루고 미뤘을 일들이, 특별한 몰입 없이도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집중이라기보단, ‘진입장벽이 낮아진’ 기분이었다.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노란색은 나를 각성시키는 대신, 부드럽게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햇살 같은 색감이 방에 퍼지자 감정이 덜 날카로워지고, 해야 할 일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날의 공부는 최고 효율은 아니었지만, 출발점으로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공부를 하기 ‘싫지 않았던’ 날이었다는 것, 그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수요일 – 시간이 사라진 날, 초록빛 속에 흐르듯 몰입한 시간
수요일은 마치 계획된 듯 집중이 폭발했다. 아침부터 수학 문제에 빠졌고, 오후엔 에세이 작성을 몇 시간 동안 끊기지 않고 이어나갔다. 하루가 끝나고 나서야 ‘왜 이렇게 잘 됐을까?’ 돌아보며 환경을 떠올렸는데, 가장 큰 차이는 조명과 배경 화면이었다. 초록빛 조명을 켜고, 바탕화면을 숲속 이미지로 바꿔둔 날이었다.
사실 초록색은 처음엔 별 기대 없이 선택한 색이었다. 눈이 편하고, 공부 오래 하면 피로감 덜할 것 같아서 단순히 ‘눈 보호용’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 공간에 머무르자 느낌이 달랐다. 마음이 아주 잔잔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감정이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무심히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이날은 시간 개념조차 흐릿해졌다. 집중에 빠지면 가끔 느끼는 ‘몰입의 터널’ 같은 그 상태가 자연스럽게 유지됐다. 초록색은 내가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도록 도와줬고, 대신 생각의 흐름과 논리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수요일의 공부가 ‘가장 잘된 날’이었던 이유는 바로 이 부드럽고 지속적인 집중력 덕분이었다.
금요일 – 일은 했지만 불안했던 하루, 색이 주는 미묘한 불협화음
금요일은 나름의 결심이 있었다. ‘오늘은 마무리를 잘하자.’ 그래서 의욕을 올리기 위해 밝은 주황색 조명과 붉은 계열 책상 매트를 깔아두었다. 강한 에너지를 받으며 빠르게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전엔 꽤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강의 영상을 정리하고, 필기를 복습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점심 이후부터 컨디션이 무너졌다. 짜증이 조금씩 올라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마감 압박을 받는 듯한 기분.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지만, 저녁 무렵 다시 조명을 차분한 톤으로 바꿔본 순간 깨달았다.
붉은색은 확실히 ‘각성’에 강한 색이다. 하지만 그 자극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감정을 빠르게 고조시키는 만큼 반작용도 크다. 공부는 일정량 했지만 마음은 불안했고, 만족감도 적었다. 할 일은 했는데 마음은 조급한, 그런 날이었다. 금요일의 실패는 업무량 때문이 아니라, 공간의 감정 온도 때문이었다.
공부가 잘 되는 날의 공통점은 ‘기분 좋은 몰입’이었다. 그리고 그 몰입의 배경엔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색’이 있었다. 색상은 집중력의 온도 조절 장치다. 차분하게, 자연스럽게, 때론 강하게 우리를 공부로 이끌거나 밀어낸다. 다음번 공부 공간을 꾸밀 때, 배경의 색도 한번 고려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