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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사람에게 오늘 나를 색깔로 표현해달라고 해보았다

by 알면 쏠쏠한 지식 블로그 입니다 2025. 6. 25.

우리는 늘 말과 표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색이라는 도구는 훨씬 더 직관적이고 때론 솔직한 감정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의 나를 색깔로 표현하면 어떤 색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대답과 시선이 돌아왔고,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오늘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주변 사람에게 오늘 나를 색깔로 표현해달라고 해보았다
내 주변 사람에게 오늘 나를 색깔로 표현해달라고 해보았다

회색 – 피곤해 보인다는 말에 담긴 숨겨진 신호

첫 번째로 물어본 사람은 내 룸메이트였다. 아침에 함께 나서며 내가 던진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오늘 너는 회색 같아. 밝은 회색도 아니고, 좀 탁한 느낌?”
처음엔 살짝 당황스러웠다. 회색이라니, 생기 없고 무난하고 어쩐지 지쳐 보이는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운 없어 보이고, 말할 때도 목소리에 힘이 없더라. 그냥 배경 같은 느낌?”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아침부터 무기력했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기분도 어정쩡했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느껴져 묵직한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표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표정과 말투에서 흘러나간 것이었다. 회색이라는 색은 ‘무감정’이라기보다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재미있는 건, 회색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나에게 감정 인식의 신호가 되었다는 점이다. 감정을 숨기느라 무채색이 된 오늘의 나.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오히려 스스로를 더 정확히 바라보게 된 순간이었다. 나도 몰랐던 피로가, 회색이라는 말 한마디로 명확해졌다.

 

주황색 – 예상 밖의 따뜻한 대답

두 번째는 직장 동료에게 물어봤다. 평소 업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사이지만, 감정적인 대화를 깊게 나눈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가 나를 가리키며 말한 색은 ‘주황색’이었다. 나는 속으로 ‘진짜?’ 하며 의아해했고,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너 되게 말도 차분하게 하고, 회의할 때 분위기 푸는 역할 하던데? 주황색은 에너지도 있는데, 공격적이지 않고 따뜻한 느낌이잖아.”

이 말은 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다고 느꼈던 내 안의 감정을, 누군가는 ‘따뜻한 에너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반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황색은 빨강의 열정과 노랑의 경쾌함 사이에 있는 색. 부담스럽지 않게 주변을 감싸는 온기. 내가 의식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돌아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있었다. 업무적으로 누군가를 중재하거나, 웃긴 말을 던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 한 순간들이 생각났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주황색'으로 남았다는 건, 참 고마운 해석이었다.

이 경험은 내가 가진 에너지가 전혀 없지 않다는 걸 알려줬다. 피로와 함께 존재하던 작은 배려들이, 따뜻한 색으로 번역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늘색 – 나도 몰랐던 ‘현재의 나’의 기류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와 가족 단톡방에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답은 ‘하늘색’이었다. 내 동생이 단답으로 남긴 말이었다.
“오늘 누나 하늘색 같아.”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분 좋아 보이지도 않고, 나빠 보이지도 않고… 그냥 좀 멍한데, 그래도 편안해 보여.”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났다. 정말 그런 하루였다. 뭔가 뚜렷한 감정은 없지만, 거슬리지도 않고, 무난하게 흘러가는 하루. 내 안에서도 특별히 인상 깊은 기복은 없었다. 하늘색은 감정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열려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딱히 고정되지 않은 상태.

재미있는 건, 하늘색은 내 기분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색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단지 피곤하다고만 느꼈지만, 사실은 그냥 ‘비워진’ 상태에 가까웠다. 무기력과 편안함의 사이. 그 애매한 지점을 하늘색이라는 말로 누군가 정확히 짚어줬다는 사실이, 오늘 내 감정을 정리하는 데 큰 단서가 되었다.

 

색으로 나를 묘사해보는 일은 단순한 재미 그 이상이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나도 몰랐던 분위기, 또는 무심코 흘린 태도가 모두 색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색은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더 선명해졌다. 오늘 나를 ‘어떤 색’으로 기억하게 될까? 문득, 매일 한 번쯤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