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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이 나에게 주는 위로

by 알면 쏠쏠한 지식 블로그 입니다 2025. 6. 24.

정은 강렬한 동시에 조용하고, 절제된 동시에 깊은 색이다. 사람들이 말하듯 검정색은 때론 방어막이고, 때론 자신을 숨기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색이 단순히 ‘슬픔’이나 ‘격식’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루를 온전히 검정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채색이 품고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로웠다.

무채색이 나에게 주는 위로
무채색이 나에게 주는 위로

조용히 나를 감싸주는 옷 – 검정이 준 심리적 안정감

무채색으로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느껴진 건 단순한 ‘무난함’이 아니었다. 무채색은 시선을 끌지 않지만 존재감을 지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외형의 불필요한 설명을 지워주고, 스스로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요란하지 않고, 안정적이며, 무엇보다 ‘내가 어떤 상태이든 괜찮다’는 묵직한 허용의 메시지를 주는 색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검정 옷을 입은 나를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단정한 사람’처럼 느꼈던 것 같다. 평소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가 전한 말들은 더 진중하게 받아들여졌고, 표정 하나에도 의미가 더해졌다. 이건 생각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진심이 전해지는 느낌. 검정은 그런 깊이를 내게 선물해주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무채색을 입은 채 혼자 걷는 시간이 유독 편안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시선을 차단하고 외부와의 긴장을 줄이니,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향하는 집중력이 높아졌다. 거리를 걸으며 음악을 들을 때도, 창밖을 바라볼 때도, 나는 유난히 ‘나 자신과 대화 중’이라는 감각을 또렷이 느꼈다. 검정은 침묵을 유도했지만, 그 침묵은 공허함이 아닌 사색이었다.

그날, 나는 검정을 통해 외부와의 거리를 살짝 조정하고, 나를 조용히 마주하는 방법을 배웠다. 시선을 피하지 않되, 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 검정은 바로 그런 ‘온화한 방어막’이었다.

 

감정을 덜어내는 힘 – 무채색이 비워주는 마음

하루를 검정으로 채우다 보면, 색감이 주는 감정 자극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원색의 옷들은 종종 기분을 고양시키고 에너지를 만들어주지만, 검정은 그러한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기보다 감정을 ‘덜어낸다’. 이게 무채색의 진짜 위로였다.

내가 검정을 택한 날은 평소보다 내 감정선을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 무언가에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일도 줄었다. 예민하게 반응할 일에도 그냥 ‘흐른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 자신에게도 한 발 물러서서 관찰자가 되어볼 수 있었다. 검정이 만들어낸 일종의 정서적 여백이랄까.

이날, 나는 감정을 덜어내는 여러 행동들을 함께 실험해봤다. 뉴스 알림을 끄고, SNS를 멀리하고, 흑백 필터를 켠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세상이 색을 잃어간다는 느낌은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단순해졌고, 내 마음 또한 가벼워졌다. 색이 사라지니 의미가 뚜렷해지고, 판단도 명확해졌다.

검정은 내 감정에 덧칠하지 않는다. 기쁜 날엔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우울한 날에도 억지로 밝게 만들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준다.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 된다. 마치 검정 노트에 펜으로 끄적이듯, 조용하고 은밀한 마음의 대화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비움은 치유와도 연결된다. 불필요한 생각을 덜어내고, 내면을 고요하게 정리하는 하루는 나를 다시 제자리로 데려다준다. 검정은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받아주며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색이었다.

 

보이지 않기에 더 잘 보이는 것들

검정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보이지 않기에 더 많이 느끼게 하고, 더 잘 보이게 하는 색일지도 모른다. 검정 옷을 입고 하루를 보내며 가장 두드러지게 느꼈던 건 주변의 색, 표정, 감정, 소리들이 오히려 더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평소라면 스쳐 지나칠 거리의 간판, 사람들의 말투, 하늘의 흐림 정도조차도 더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검정이 배경이 되어주니 주변이 더욱 두드러졌던 것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옷차림이 오히려 주변 세계를 더 ‘또렷하게 조명’하는 필터가 되어준 셈이다.

이날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세상을 더 섬세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되었다. 대화 중 상대의 작은 말버릇이 귀에 들어왔고, 그날의 구름은 묘하게 낮게 깔려 있었으며, 커피잔 위의 증기마저도 사진처럼 또렷하게 남았다. 마치 내가 풍경 속의 색이 아닌, 그 그림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또한 검정은 내가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 드러내도록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말하자면 투명한 솔직함이 아닌, 절제된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검정을 입고 있었던 날, 나는 오히려 말수가 줄었고, 내가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구분하기 쉬워졌다.

무채색은 숨기기 위한 색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드러내는 용기의 색일지도 모른다. 강한 색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절제, 침묵, 여백 덕분이다.

 

무채색으로 채운 하루는 나를 조용히 감싸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허락해주는 날이었다. 무채색은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을 정리하고, 생각을 또렷하게 만들었고, 나를 다시 나로 되돌려주는 색이었다. 검정은 사라짐이 아니라, 깊어짐의 색이다. 오늘 나는 그 깊이 속에서 더 명확한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