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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상징 의미로 하루를 설계해 봤을 때

by 알면 쏠쏠한 지식 블로그 입니다 2025. 6. 25.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우리의 감정과 태도, 심지어 하루의 방향까지 결정짓는 무형의 언어다. 빨간색이 용기라면 파란색은 차분함이고, 노란색은 낙천적인 기운을 품고 있다. 나는 색이 가진 상징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하루를 설계해보기로 했다. 감정이 아닌 ‘색의 의미’를 기준으로 선택한 하루는 놀라울 만큼 명확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색의 상징 의미로 하루를 설계해 봤을 때
색의 상징 의미로 하루를 설계해 봤을 때

 

🔴 아침의 빨강 – 주저함을 밀어내는 색의 힘

하루를 여는 순간, 어떤 감정으로 시작하느냐는 하루 전체의 방향을 좌우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아침을 ‘빨강’이라는 색의 상징과 함께 열어보기로 했다. 빨간색은 전통적으로 열정, 추진력, 용기를 상징하며, 긴장과 에너지를 자극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그날 아침, 나는 침대 옆에 빨간 머그잔을 놓고, 진한 붉은색이 도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단순한 색의 선택이었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직접적이었다. 평소 같으면 망설이던 메시지 전송, 미뤄두었던 업무 메일 전송을 망설임 없이 처리했다. 마치 이 색이 내 안의 ‘주저함’을 꺼내어 어딘가로 날려 보내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옷장에서도 평소 잘 손이 가지 않던 붉은색 니트를 꺼내 입었고, 출근길 버스에서조차 나는 조금 더 곧게 앉아 있었다.

특히 놀라웠던 건 발표 시간이 다가왔을 때의 반응이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그 감각마저 ‘움츠러듦’이 아닌 ‘도전 전의 준비’처럼 느껴졌다. 그날 발표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내 안의 어떤 벽이 부서진 순간이었다.

빨간색은 나를 자극했다. 감정을 들쑤셔 올리고, 행동을 재촉했고, 결국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색 때문이 아니라, 그 색이 상징하는 ‘행동하라’는 메시지가 나의 무의식에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색은 말없이 속삭였고, 나는 그 속삭임을 따라 하루를 열 수 있었다.

 

🔵 정오의 파랑 – 혼란 속에서 나를 다잡는 색

점심 이후의 시간은 종종 감정이 흐려지거나, 집중력이 무뎌지는 구간이다. 이런 시간에 나는 파란색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파랑은 신뢰, 명확함, 차분함, 이성을 상징한다. 바다와 하늘의 색이자, 우리의 사고를 정돈시키는 색이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파란색 메모지, 파란 펜, 파란 배경화면으로 책상을 채워봤다.

재밌는 건, 그런 작은 색감 변화만으로도 내가 메모에 적는 말투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문장이 많았다면, 그날은 ‘할 수 있다’, ‘정리해보자’와 같은 구체적이고 중립적인 언어가 많아졌다. 이는 분명 파란색의 심리적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꼈다. 내 안의 감정이 아닌 사고력이 작동한 것이다.

또한, 회의 도중 흥분하거나 흐트러질 법한 순간에도 파란색 물병을 바라보며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감정이 증폭되는 대화에서는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데, 시선이 머무는 곳의 색이 나의 감정 곡선을 차분히 눌러주는 듯했다. 그것은 ‘파랑이 가진 냉정함’이 아니라, 지혜롭고 조율된 냉철함에 가까웠다.

그날 오후는 일 처리 속도도 평소보다 일정했고, 작은 판단의 오류도 줄었다. 나를 흥분시키지 않고, 중심으로 되돌려주는 색. 파란색은 혼란과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균형을 찾게 해주는 시각적 닻이었다. 정오 이후의 파랑은 명확한 나를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저녁의 보라 – 하루를 수용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

해가 지고 나면 우리는 하루를 정리하며 자기 자신과 더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 시간대에 나는 보라색을 선택했다. 보라는 내면, 통찰, 치유, 직관을 상징하며, 종종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을 수용하는 색으로 사용된다. 이 색이 가진 신비함과 온기가, 하루의 끝에 딱 맞았다.

나는 일부러 보라색 조명이 있는 스탠드를 켰고, 라벤더빛 쿠션이 놓인 의자에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의 나는 아침보다 한결 고요했고, 오후보다 감정적으로 유연해져 있었다. 흥미로운 건, 평소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채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수한 일도 탓하지 않았고, 애매했던 감정도 차분히 써내려갔다.

보라색이 주는 이 ‘포용의 감각’은 단순히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다. 색이 뿜어내는 그 특유의 정서가 내 사고방식을 부드럽게 만든 것이었다. 마치 나를 제3자처럼 보게 해주며, 하루를 관조하고 받아들이게 도와주는 느낌이었다. 명상할 때 조명을 일부러 어둡고 보랏빛으로 바꾸는 이유가 이제는 이해된다.

보라는 말이 많지 않지만 깊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열게 하고, 자신을 수용하게 만든다. 나를 더 많이 내려놓게 만든 색. 하루의 끝, 그 보랏빛 순간은 내 감정을 고요히 감싸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색은 위로였다. 조용하고 은근하지만 가장 깊이 닿는 위로.

 

색의 상징은 시각 그 이상이었다. 빨강은 용기를, 파랑은 중심을, 보라는 치유를 줬다. 우리는 하루의 감정과 행동을 ‘색의 의미’로 설계할 수 있다. 무의식은 색의 언어를 알아듣고, 우리의 선택을 부드럽게 유도한다. 색을 입는 건 결국,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었다.